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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2010년의 시작. 본문

일상

다사다난한 2010년의 시작.

룬이 2010. 3. 11. 02:27



1.
  대게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한 해가 저물 즈음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식으로 쓴다. 하지만 이 말은 올해의 나에게 딱 어울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에게 여러 도전적인 일들이 많았다.
 
  점점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던 사람이 나와 내 주위사람들 사이의 화두로 오르면서 나는 당황스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도 한 때 연이 닿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언행을 하고 다녔나'라는 생각에 인간적인 배신감이 나를 괴롭혔다. 동시에 그 언행으로 피해를 입었을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심히 무안해지고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인연이 끊기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고 내 주위의 피해자(?)들이 그 사람의 언행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그들이 느낀 바 대로 나를 바라봐주고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분노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정적인 조각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를 느낄 필요도 아니, 실제로 분노를 잘 느끼진 못한다. 인지적인 기억 조각들만이 남았기에 단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조각들과 괴리 될 때 당황스러움 정도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제법 시간이 지난 인연에 대한 배신감 보다는 비교적 최근 나에게 일어난 여러 일들이 나에겐 더 충격적이다. 혹은 충격적일것이다. 내가 '충격적이다'라는 격한 감정 표현을 왜 추측 표현으로 쓸 수 밖에 없을까. 이 즈음에서 나는 내가 억압적 방어기제를 쓰고 있지 않은가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왜냐하면 난 누구나 충격적이다라는 것에 동의할 사건에 대해 솔직히 지금은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 약간 슬프고 두려우며 절망감을 느낄 뿐이다.(물론 초반엔 말할 수 없는 우울감과 좌절감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오로지 사건의 전말에 대한 이성적 기제만 돌아가고 있다. 이성만 돌아가고 감정은 느끼지 못하는 억압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표정을 짓고 저런 말을 할까에서 부터 궁극적으로는 왜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등등.(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으므로 실제론 '저 사람 머리 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 걸까?'내지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살까?'정도일 것이다.)


2.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사고를 저지르는 사람들. 철학과를 나오면 철학관을 차리고 심리학과를 나오면 심령술로 점을 치고 한문학과를 나오면 서당이라도 차리는 줄 아는 사람들. 인간 관계에 있어 I know it all along을 외치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각자의 삶이 각자의 분만큼 빛날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를 짓밟는 사고와 행동이란 점에서 위 세 부류는 나를 우울하게 한다. 

   소화가 되지 않아 불편감(?)으로 떠는 내장의 느낌이 온 몸에 퍼지면 이런 우울함은 극대화 되고 억압되었던 감정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내 인생을 다 바쳐 미워 해도 모자랄 만큼 밉지만 그런 분노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기에 나는 더 사랑할 뿐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한없이 모자라고 그래서 난 열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ㅎㅎ


3.
  서울에 그래도 횟수론 4년 살면서 눈오는건 한 두번 본 건 아니지만 눈이 쌓인지 얼마안된 학교의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동화 속 세계에 온 기분이 들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이 아프면서 붉어지고 울음이 터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자신의 형상 모든 곳에 눈이 쌓여 있는 축축하고 앙상한 검은 나뭇가지가 나 처럼 보였기 때문일까나. 나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은 즐겁고 황홀하지만 나무는 차가운 기온과 습도 등이 종의 생존에 불리하지 않도록 부단하게 몸부림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눈이 녹고 떨어지고... 날씨가 풀려 새파란 잎들이 조그맣게 싹트기 시작하면 나도 온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볼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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