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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 김용옥,『여자란 무엇인가』 - 절대와 상대 본문

심리학

[문화심리학] 김용옥,『여자란 무엇인가』 - 절대와 상대

룬이 2010. 2. 22. 08:31

  책의 중반까지를 읽고 우리학교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동아리의 사람 한 명(이하 L군)과 고등학교 때 친구(이하 K양)의 소개로 점심을 먹게 되었다. L군은 기독교인으로 대학을 들어와 믿게 된 사람이라고 하였다. K양이 L군과 나를 주선해준 이유는 기독교 예배에 참여하고 하나님을 만나서 순종하고... 등등의 그네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치들을 나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네들'이라는 표현에서 내가 기독교에 부정적인 견지를 가진 것으로 보일까 미리 말하지만 K양과 나는 고등학교 때 기독교와 관련하여 여러 활동들을 같이한 경험이 있고 나는 그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그런 경험을 거부감 없이 함께 한 이유는 K양이 나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L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 생각들을 진지하고 고요하게 들어주었고 우리는 서로의 신념차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였다.

  나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고 힘들 때 마다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기독교 인인가?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인들이 나를 보면 지옥에 나가 떨어질 이단교도라고 할 정도로 나는 기독교의 교리들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 있다. (실제로 교내에서 선교를 하고 다니는 기독교인들이 나와 말을 하다 분을 삼키며 돌아간적이 많다.-_-)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으며 매일 기도를 하지도 성경을 읽지도 않는다.(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힘들 때 가끔 성경을 읽는다.) 당연히 선교 활동이란 것은 하지 않으며 오히려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달님을 보고 '하나님~!'하며 기도 한 적이 있고 부처나 공자, 맹자, 장자, 노자의 가르침이 적힌 책들을 보고 감탄하고 존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 적혀있는 혹은 하나님의 큰 가르침이 마음에 들고 그를 섬긴다. 내가 성경을 일독하지 않고 기독교에 대해 거의 무지한 것이나 다름없어 자세히 혹은 정확히는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작은 것에도, 고난도 감사히 여기는 자세가 아름답고 진정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헐벗은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나누어 준 기독교의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존경한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내가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버티기 힘든 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놀랍고 즐거운 일들을 맞닥뜨릴 때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고 기도를 드린다.

  나는 나에게 감동을 주고 인류애적 가치를 주는 모든 가르침을 거부하지 않고 존경하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도움 되는 글이 많이 실려있고 인문서적에서 인용되는 재미난 내용이 많은 수록된 책을 경전으로 하는 기독교(혹은 기독교의 신)를 중점적으로 믿고 있을 뿐이다.

  사실 불과 며칠 전의 나로서는 내가 위와 같은 말들을 쓰리라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관념적으로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고 게다가 믿고 있으며 거기서 힘을 얻는다. 또 내가 믿는 신은 엄연히 말해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또 다른 관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벌받을 짓이며 하나님이 내 고난과 고통을 이해해주시지 않고 내 기도에 응해주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내 막연한 두려움과 의구심들을 떨치고 내 어지러웠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L군이 말하길 '진리와 비진리가 있는데 그 진리는 하나님이고 오로지 하나의 진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말하길' 진리와 비진리가 있는데 진리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포함해서 여러 개가 있다'고 했다. 나는 신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인류 역사상 기독교의 하나님이던 부처님이던 알라신이던 한국의 하느님-따님이던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믿어왔고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러한 절대적 진리가 하나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더욱 더 분명해졌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 나는 하나의 진리가 있고 내가 그를 거부하는 것이 신지식인인마냥 행해왔다고 느꼈다. 저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나는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집안이 매우 유교적이어서 여자를 천대(?)했고 여자인 나는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커가면서 나를 그렇게 대했던 어른들을 덜 계몽된 사람으로 바라보았고 남녀평등을 귀에 박히도록 들은 나를 신여성인 것처럼 가치를 부여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록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할머니나 이웃 어른들로부터 미움을 산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매우 유교적이어서'라는 귀인은 옳지 않다. 고등학교 때의 국사 시간의 어스름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의미하는 유교적이어서라는 뉘앙스의 속성들은 겨우 조선후기에나 생긴 것일 뿐이다.

  동양의 학문들은 기본적으로 음양오행설과 같이 조화를 강조하지 어느 한 속성이 절대적이라거나 진리라고 하지 않는다. 1학년 때 수강했던 '도교로 보는 중국문화'라는 교양 시간에서 항상 느꼈던 바이지만 동양의 학문, 예술, 음악 즉 문화에는 '상(相)'이라는 단어가 참 잘쓰인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기(氣)인 듯 하다.) 저자의 글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내용 중 하나가 우리의 언어를 역사 및 문화와 연관하여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런 흥미를 이어나가 '상(相)'을 내 멋대로 해석해 본다면 '나무(木)'을 '본다(目)'가 합쳐진 회의자로 하느님아드님과 따님따님의 만남을 본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느 하나가 절대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비진리인 것이 아니라 여러 진리가 공존하고 만난다. 따라서 상대적이라는 말은 여러 개의 진리가 있을 수 있따는 뜻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임의로 뜻 풀이를 한 것이긴 하지만 저자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통하는 것 같아 참 신기했다.

  이러한 '상'을 나의 남-여,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가치관에 적용해 생각했다. 나는 적어도 종교에 있어서는 '상'의 견지에 서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정작 나의 문제인 '여자'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문제는 명확한 견지 없이 행했던 것 같다. 내가 차별받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은 실지로 그런 환경이 실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남녀를 구분짓고 현상학적으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우위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차별받고 있다'와 같은 내 생각의 해소는 '남녀가 평등해지는 것에서 올 것인가'와 '여자가 보다 우위에 간 상태에서 올것인가' 중에서 까놓고 생각해보면 후자가 아니었나 싶다.

  L군과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책의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그리고 앞선 이야기를 종합해서 떠올렸다. 기독교라는 서구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종교의 기본 견지가 절대 진리를 하나 가정하고 이외의 것은 그 절대 진리의 결여태 혹은 말 그대로 이외의 것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L군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네들의 하나님을 오롯이 믿지 않은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개화시켜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언급한 물 떠놓고 기도하는 것, 달님에게 기도하는 것, 제사를 지내는 것 모두를 가슴 아파 했고 절대 진리의 결여태로만 바라보았다. 상대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대성에 얽매일 때 우리는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편협한 논리에 갇혀 생각이 맴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지한 상태에서 유교적이어서 라는 일방적인 귀인을 하고 있던 것과 스스로가 여성을 남성의 결여태라고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던 자세가 책을 읽으면서 아주 따끔하게 지적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을 보면서 무언가를 논하고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선 그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하고 진심으로 노력해 알야아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감정적 불편함 때문에 '개독', '예수쟁이'등과 같이 기독교를 비하하거나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남성 및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의구심이 든다면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어보고 깊게 생각해서 나름의 답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합적으로 숙고한 부분은 '진정한 상대(相對)는 무엇인가'였다. 남자와 여자를 생각해보자. 남자는 여자 없이 남자일 수 없고 여자 또한 남자 없이는 여자가 아니다. 즉 누군가가 결여태이고 누군가가 우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의존적이고 동시에 서로에게 독립적인 상대 개념이다. 따라서 여자 혹은 남자 또는 남자-여자 둘 다를 이해하려면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의 무지가 또 한번 드러나는 것 같긴 하나 일부 여성주의 관점과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진정한 여성 해방을 실천하고 싶다면 논지를 '여성이 핍박받았으니 이제 보상받고 남성보다 격상되어야 한다는 방향'보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상대개념이다'를 항상 전제하면서 인간본위의 것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범주화하고 서열화한다. 그 속에서 절대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양분적으로 나누어 보기 쉬워진다. 나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니더라도 신을 믿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기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또 절대적인 신의 존재 자체와 그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함을 전제로 신의 속성을 생각해보자면 신은 완벽하여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어야 한다. (완벽한 신은 절대성과 상대성이라는 반대 개념의 가치를 모두 가져야만이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절대성은 상대성과 상대적인 개념이다. 남자와 여자는 한 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을 굳이 남자나 여자라는 단어로 말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절대도 상대가 없으면 절대가 아니다. 그리고 상대도 절대가 없으면 상대가 아니다. 따라서 신, 남-여 등의 여러 주제에 있어 절대성은 존재하나 상대성을 전제로 존재한다.

  절대성, 신, 상대성, 여자, 남자, 인간에 대한 논의는 이 글 안에서이든 내 삶에서이든 종결되지 않을 것만 같다. 그저 절대와 상대라는 단어의 장난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다 막연한 두려움과 의구심이 체계적인 생각들로 변화되었기에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도라면(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 분명히 꾸준히 생각해야할 거리들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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