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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학습심리학] 미생물도 학습이 가능한가?

룬이 2009. 12. 11. 17:27
  
  미생물과 '학습'이라는 개념을 연관시켜 주제를 잡은 이유는 생물체들의 학습연구에 있어 여러 종류의 연구대상을 보아왔지만 미생물과 같이 뇌와 척수가 없는 생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 연구에 있어 실험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직접적으로는 실험적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후에 윤리적 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보니 부담이 적을 미생물에 개인적인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제 선정의 보다 가까운 계기가 된 일은 세계에서 저명한 과학저널인 (Nature)에 박테리아의 학습 능력과 관련된 기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해서 평소 수업 교재에서 다루는 실험과는 다르게 매우 최근의 실험 (후속연구나 심화연구가 부족하긴 하지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 학습의 기본적(심리학적) 정의

  본격적 논의에 앞서, 학습이라는 개념의 정의에 대해 보다 정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 흔히 쓰이는 연구대상과 미생물은 생물학적 구조차이 뿐만 아니라 기능적 차이도 크기 때문에(이 차이는 우열가치가 배제된 차이를 말한다.) 학습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심리학에서 기본적으로 정의하는 학습이란,

'경험에 기초하여 행동 또는 행동 잠재력 상의 비교적 일관성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

을 말한다.

  보다 자세히 정의를 분석 해보겠다. 첫째, '경험에 기초하여'라는 부분은 학습이라는 것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것은 무엇인가를 경험해서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학습이라고 볼 수 없다.


  둘째, '행동 또는 행동 잠재력 상의'라는 부분은 학습은 눈에 보이는 행동 그 자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해, 인지 능력의 변화도 포함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학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철학적 논의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비교적 일관성 있는'이라는 부분은 학습의 영향력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에 이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술이 취해서 하는 행동들을 술이 깨면 더 이상 하지 않는 일시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학습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2. 학습의 재정의

 
  미생물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앞선 심리학적 관점의 학습의 정의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이는 미생물의 특성에 맞게 재정의해야 한다. 위 관점의 정의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되진 않지만 후에 나올 학습의 여러 유형들이 보다 협소한 느낌(열심히 공부한다는 뉘앙스로서의 학습)으로 다가와 미생물과 학습이 약한 관계를 가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정의보다 보다 넓게 학습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정의가 하나의 유기체의 일생에서의 뇌 속 뉴런들의 연결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미생물의 경우 하나의 개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수많은 개체 간 유전자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미생물 개체 하나 하나를 연구 하다보면 학습의 효과가 미미하여 자칫 학습이 불가하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습의 기간 또한 기존의 정의에서 전제하는 기간(빠르면 millisecond단위도 다뤄진다.)보다 더 오랜 진화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3. 박테리아의 학습 - 실험 설계 및 결과 분석


  (Nature)에 2008년 5월 8일에 실린 Michael Hopkin의 Bacteria 'can learn' - Colonies evolve to anticipate changes in their surroundings.의 연구 설계를 정리해 보고 그 결과를 분석해보겠다.

a. 실험 설계 
* 실험 대상 : E. Coli colonies

① Computer Simulation: 실제 실험을 하기에 앞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당 박테리아가 특정 학습을 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따져본다. (이 실험에서의 학습이란 anticipatory behavior를 본다; anticipatory behavior이란 앞의 고전적 조건화에서 개가 종소리만 듣고 후에 음식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반응-침 흘리기-을 한 것과 동일하게 이해하면 된다.)

② In the lab
- 환경 자극1(CS-종소리) : 온도조절 25℃ ~ 37℃
   환경 자극2(US-음식) : 산소농도 0% ~ 20%
- 특정 온도와 특정 산소 농도를 연합시킨다. (특정 종소리와 주는 음식 양을 연합)

* '특정 온도 - 특정 산소 농도'연합은 수백 가지의 가짓수가 나온다.
  - 연합학습을 몇 주간 지속한다.

b. 결과 분석
  ① 온도라는 환경자극1이 제시 된 이후 그와 짝 지어진 산소농도의 변화가 있기 전에 박테리아가 곧 있을 해당 산소농도에 적절한 물질대사 상태를 형성해두었다. -> anticipatory behavior를 보였다!
② 수많은 짝(온도-산소)가짓수에 ①과 같은 행동 반응의 변화가 나왔기 때문에 고전적 조건화 학습을 했으며 미세한 자극변별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4. 박테리아의 학습 - 미생물의 학습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위 실험을 통해서 간단한 차원의 학습이지만 박테리아도 일종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위 실험은 E. coli군집만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방법론적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즉 다른 박테리아에서도 마찬가지의 결론이 반복 검증되어야 박테리아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미생물의 학습은 더 폭넓은 종류의 미생물을 실험대상으로 하여 연구, 타당성을 인정받을 때 쓸 수 있는 개념이다. 또한 우리는 미생물의 학습을 이해하기 위해 학습의 정의를 보다 느슨하고 넓게 잡았다. 따라서 정말로 학습에 의해 변화행동을 가져온 것인지 단순히 진화적 산물로써, 본능적 반사행동으로써 변화 행동이 온 것인지 그 구분이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실험에서 E. coli가 예측적 행동을 학습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실험 내 변수의 조절에 따른 여러 경우의 가지 수에 근거한 실험 설계 자체가 뒷받침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반복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박테리아 및 미생물의 학습이 가능하다면 이는 엄청난 위험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미생물은 매우 작고 간단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군집을 이룬 구조와 실질적 기능을 본다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우선 미생물의 학습능력이 실재한다면 미생물에게 특정 자극과 다른 자극(위 실험) 혹은 다른 반응 및 보상을 연합시켜 의료 분야나 산업 분야에 폭넓게 응용 될 수 있다. 특정 병에만 반응 하도록 학습시킨다던지, 특정 환경에서만 활성화 되어 산업폐기물을 처리한다던지 등의 학습에 의한 긍정적 파급 효과는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적합한 미생물을 수동적으로 찾고, 소극적으로 조작하기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미생물을 이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반면에 발전적인 방향, 순수한 학문적 연구가 아닌 부정적인 방향으로 미생물이 학습된다면 그것 또한 상상이상일 것이다. 특정 환경에서 특정 파지 시간 이후에 발현되는 생화학 무기, (약간 공상적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도구적 조건화와 마찬가지로 미생물 스스로 행동변화 학습을 해버려 무시무시하게 진화해 가는 질병들. 미생물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조작연구 및 가설을 세울 법하다고 생각한다.


  즉 미생물의 학습 능력 유무에 따라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설들이 나올 수 있다. 앞으로의 후속연구를 통해 더 발전된 연구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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